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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지식

[건강] 숨을 잘 쉬어야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

by a four-leaf clover 2021. 12.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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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을 쉬지 못하면 죽게 된다.

물론 살아있는 모든 이는 숨을 쉬고 있지만 중요한 것은 숨도 잘 쉬어야 잘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점을 대부분의 사람들은 잘 모르고 산다.

 

숨이란 날숨과 들숨을 말한다. 

줄여서 호흡이라 하는데, 이 속에 행복한 삶의 비밀이 담겨 있다.

이는 바로 이완과 수축이며 나아가 음양의 조화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놀라게 되면 절로 숨을 크게 들이마시게 되고 그로서 온몸의 근육과 뼈에 힘을 축적하게 된다.

이는 장차 있을 지도 모르는 위기 상황에 대비하는 생리적인 긴장 반응이다.

그렇지만 긴장 상태가 오래가면 몸에 좋지 않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으므로 평상시에 우리는 이완과 수축을 되풀이하는 자연스러운 리듬을 갖는다.

 

 

 

 

그런데 현재에는 그런 리듬이 깨지기 시작했다.

'빨리빨리 중독증'에 빠져들어 수축만 할 뿐 이완의 여유를 잃어버렸다.

더 빠르고 더 높고, 더 강한 것들이 가치이자 덕목이 되어버려 스스로를 쥐어짜는 생활이 계속되고 있다.

 

올림픽만 해도 그 본래의 순수한 뜻은 인간의 체력과 덕성을 함양하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런 올림픽 조차도 '더 빨리, 더 높이, 더 힘차게'가 최고의 목표가 되었다.

또한 최근 수십 년간 반도체 집적 소자의 밀도가 4년마다 두 배가 넘는 증가 성장 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이제는 강하고 빠르며 더 높은 것에 대한 열망이 아예 현대인의 체질 속에 용해되어 생활의 기본이 되어버렸다.

가히 지금의 시대는 급속한 변화와 속도의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물론 외부로부터의 자극이 너무 오랫동안 없으면 우리의 몸과 마음은 다 풀어져서 근육과 뼈마디에 힘이 빠지고 정신도 나태하게 된다.

하지만 지금 사람들의 권태나 나태는 자극이 없어서가 아니라 자극 과잉의 결과로 웬만한 자극은 자극도 아닌 것이 되어버렸다는데 문제가 있다.

그러다 보니 사물을 넓게 보고 긴 호흡에서 바라보는 사고는 실종되어버리고, 순간의 집중적인 자극만이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도록 우리의 의식이 변해버렸다. 이런 변화는 당연히 우리의 호흡도 가쁘게 몰아쉬도록 만들고 있다.

 

 

 

몸속에 기가 충만한 사람은 호흡도 유연하고 길다.

특히 내쉬는 숨의 길이가 급하지 않고 오래간다.

이런 것은 등산을 하면 금방 알 수 있다.

즉 산을 많이 오르내린 사람은 산길을 갈 때 숨이 급하지 않지만, 모처럼 산을 오르는 사람은 금방 가쁜 숨을 몰아쉬게 된다.

심하면 정신이 혼미해지면서 그만 주저앉아버린다.

물론 심폐 운동을 자주 그리고 꾸준하게 하는 것이 해답이지만, 그에 앞서 우리의 정신부터 긴 호흡을 가져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힘이란 언제나 긴장과 수축 상채에 있는 사람보다 평상시에 이완과 수축을 리드미컬하게 지니고 있는 사람이 힘을 쓰고 집중할 때는 더욱 강하고 부드러운 힘을 발휘할 수 있는 법이다.

여기서 부드럽다는 것은 힘의 사용이 원만 자재하여 거칠지가 않다는 말이다.

사실 이 말은 무술인들이 늘 염두에 달고 다니는 관념이며 목표이기도 하다.

강하게 더욱 강하게만 밀고 나가면 얼마 안가서 더 강해질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지만, 강약을 배합하면 그리 강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강할 수 있는 것이다.

강한 힘을 속에 숨기고 있으면서도 힘의 운용을 연하게 할 때 우리는 절제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된다. 여지가 남아있는 강함이 더욱 강한 것이다.

 

 

 

좋은 호흡의 기본은 날숨과 들숨을 고르게 하고 더욱 길게 가져가는 것이 그 출발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의 몸과 정신부터가 그렇게 되어야 한다.

구태여 기공이나 명사을 익히지 않아도 좋다.

숨 길이를 고르고 길게 가져가려는 마음가지만으로도 충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수천 가지의 기공이나 토납 법의 그 기본은 여기서 벗어나지 않는다.

 

참고로 문명이 사계절이 뚜렷한 온대 지방에서 현저히 발전한 것도 따지고 조면 기후의 변화에 따라 저절로 이완과 수축을 가능케 하기 때문이다.

즉, 변화하는 계절에 대비하여 한편으론 물러나 생각하고, 한편으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생활을 반복하면서 저절로 발전의 저력을 잉태하였던 것이다. 결국 수축과 이완, 추움과 더움, 음과 양은 인류 문명을 발달시킨 리듬이자 원동력이 것이다.

 

 

 

그런데 현대인들은 겨울에도 춥지 않은 난방 시설을 가졌고, 여름에도 덥지 않는 냉방 시설을 가지게 되었다.

이는 수축과 이완의 폭을 좁힌 것이다. 

거기에 너무나 많은 자극들이 수축 상태를 가져왔고, 거기에 속도와 높이, 강도에 대한 선망증이 우리를 한없는 긴장 일변도로 몰아가고 있다.

이로 인해 우리 몸은 알게 모르게 망가져가고 있다.

 

 

 

최근 느긋한 생활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천천히 그러나 더 훌륭한 양질의 삶을 기치로 내걸고 명상이나 요가, 시골 취향과 가족 중심의 편안하고 느긋한 생활을 추구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피에르 상소라는 사람의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라는 책에 의하면

"느림의 철학은 민첩성이 결여된 정신이나 둔감한 기질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들의 모든 행동 하나 하나가 다 중요하며, 어떤 행동이든 단지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에서 급하게 해치워버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라고 한다.

피에르 상소가 권하는 느림 실천법을 간단히 소개한다.

 

 

+ 일부러 시간을 내어 발걸음이 닿는 대로 한가로이 거닐기

+ 사람의 말을 끝까지 집중해서 들어주기

+ 반복적이고 사소한 일들을 오히려 소중하게 받아들이기

+ 우리의 내면에 귀를 기울이거나 자유롭고 무한히 넓은 미래의 지평선을 향해 마음을 열어보기

+ 우리 안에 조금씩 진실이 자라날 수 있도록 마음의 소리를 옮겨보기

+ 지혜를 가르치는 순수한 액체인 포도주에 빠져보기

 

슬로 푸드 운동이라는 것도 있다.

패스트푸드의 반대말이다.

그 기본은 시간을 아끼기 위해 먹는 즐거움을 포기하는 우를 범하지 말자는 것이고,

나아가서 음식을 기다리면서 여유를 되찾자는 것이다.

이 모두 현대 사회가 수축만 강요할 뿐, 이완을 잊어버렸다는 것에 대한 반증이다.

 

일이란 그저 열심히 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어떤 면에서 창의성이 더 중요한 것인데, 이는 단순하게 소요된 시간에 비례하지 않는 것이다.

여유롭고 부드럽게, 그리고 충분히 이완될 수 있어야만 수축할 때 제대로 수축하고 목표에 집중할 수 있는 것이다.

낮에 는 일하고 밤에는 사랑을 나누던가, 아니면 잠과 휴식을 통해 풀어주는 것이 삶이다.

이것이 이완과 수축이고, 음양이다.

그 기본은 날숨과 들숨을 고르고 길게 가져가는데에서 부터 시작된다.

 

사주를 본다는 것 역시 그 사람의 여덟 글자가 어떤 식으로 이완과 수축을 되풀이하면서 기의 흐름이 원활하게 유통되는가를 보는 것이다.

그리하여 기의 유통이 부드러우면서도 쉼이 없으면 끊임없이 면면하게 이어지면 바로 그것이 좋은 사주인 것이다.

아프면 쉬어야 한다는 것, 때로는 게을러야 집중할 때 집중의 강도가 나온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여러분의 소중한 몸을 더 건강하게 유지하시는데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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